[시론] 국가 재난안전 데이터 거버넌스 추진 방향
| 조 광 원 (주)비투엔 대표이사/(사)한국데이터산업협회 명예회장
들어가는 말
2020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면서 생활한다거나 오프라인 단체 모임이 제한되는 지금의 상황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자연재난 앞에서 인류가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세계 여러 곳에서 집중호우와 홍수 그리고 폭염 등 역대급 기후 재앙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등 인류는 자연재해와 항상 싸우고 있으며, 대부분의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패했다. 어쩌면 자연재해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시도가 무모할 수 있지만, 지구라는 플랫폼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투쟁해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이 유의미하려면 실행을 담보한 범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재난안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한편, 재난안전 유관 기관에서는 재난안전 거버넌스의 수립 및 운영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나, 데이터 측면의 거버넌스 수립 및 운영을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이다. 물론 데이터 측면의 거버넌스가 별도로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응하는 현 상황을 살펴보면 데이터의 중요성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QR코드를 등록하는데, 해당 정보는 특정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다. 기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감염경로를 추적하고 또 감염 원인을 분석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의 대응 모델은 이미 많은 나라로부터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물론 개인정보에 관한 이슈는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향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나라가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예측·예방하고 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재난안전 데이터 거버넌스의 추진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범국가 관점의 재난안전 데이터 정비
재난안전 유관 기관은 재난안전과 관련된 조직 고유의 미션 및 역할에 맞춰 재난안전 데이터를 생산 및 관리하고 있다. 물론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의 경우에는 범국가 관점에서 재난안전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으나, 다양한 재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난 유형별/재난 단계별(예방→대비→대응→복구)/목적별/시나리오별’로 분류된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 생산(확보)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안전 데이터 생산 프로세스를 범국가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재난안전 유관 시스템에서 생산 및 관리되는 데이터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재난안전 업무에 필요한 데이터가 불충분할 경우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필요시 해당 데이터를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를 추가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2. 재난안전 데이터 Catalog DB 구축
재난 상황 발생 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응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재난안전 데이터가 물리적 또는 논리적 통합 Repository에 저장되어 있는 상황이 이상적이지만, 아직 현실화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재난안전 데이터가 기관별/정보시스템별로 분산되어 관리되고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재난안전 데이터 Catalog DB 구축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재난안전 데이터 Catalog DB는 해당 재난안전 데이터의 소재/속성/의미정보를 중심으로 구성하며, 「재난안전정보 관리 및 공유를 위한 메타데이터」(TTA 표준번호 TTAK.KO-10.1126)에서 제시하고 있는 재난 분류 체계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재난 발생 시 해당 재난에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Catalog DB를 통해 탐색하고, 필요시 해당 재난안전 데이터를 확보 및 활용하는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3. 재난안전 데이터 공유 강화
현재 재난안전 데이터의 공유는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난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재난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통해 데이터를 공유받기 위해서는 해당 데이터 보유 기관의 승인을 득한 후 연계 환경을 구성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재난 발생 시 활용하고자 하는 데이터가 재난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통해 이미 공유되고 있다면 데이터를 비교적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공유되고 있지 않은 데이터를 적시에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개별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난안전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재난안전 유관 기관의 담당자들은 데이터가 공유될 경우, 해당 기관의 과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는 물론 데이터를 독점해야 기관의 권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의식이 재난안전정보의 공유를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난안전 유관 기관들은 고유의 역할·책임·권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범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을 위해서는 재난안전 데이터의 공유 대상을 확대해 나가야 하며, 재난안전 데이터의 공유를 저해하는 요인을 법·제도를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재난안전 데이터 Lake 구축
재난 상황 시 재난안전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을 수행하거나, 사전에 다양한 시뮬레이션 활동을 활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재난안전 데이터 Lake 구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범정부 재난안전 데이터 Lake 구축을 통해 범정부 차원의 주요 재난안전 데이터를 확장성이 보장된 고성능 빅데이터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적재하고, 필요시 해당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해야 한다. 또한 재난안전 데이터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적재하기 위해서는 ‘재난안전 데이터 공유 파이프라인’을 재난정보공동이용시스템 기반으로 확대·강화하고, 분석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석 데이터 샌드박스’의 구성도 필요하다.
5. AI·Big Data 분석 기반 확보
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재난안전 분야에서도 AI·Big Data 분석 등 최신 IT를 활용한 데이터 기반의 업무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그러나 AI·Big Data 분석 기술을 활용해 재난안전 업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측면에서 확보해야 할 요건들이 있다. 먼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게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AI·Big Data 분석 기술의 적용 사례를 살펴보면, 상당수 프로젝트에서 활용 가능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미래의 기술 및 환경을 예측해서 데이터를 생산 및 축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재난안전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데이터 ‘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활용 가능한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더라도 데이터에 오류가 많다면 해당 데이터를 정제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되거나, 때로는 데이터 자체를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AI·Big Data 분석 등의 기술 활용에 대한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데이터의 경우, 데이터의 품질관리 수준 및 지표를 반드시 설정해 관리해야 한다.
6. 민간 데이터의 활용 기반 마련
재난은 공공과 민간의 구분 없이 범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과제다. 재난 업무 수행 시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ICT 인프라 및 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경우, 국가의 재난 대응 역량은 강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재난안전 데이터 Catalog DB 구축에 대한 대상을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까지 포함해야 하며, 재난안전 데이터 공유 파이프라인의 영역 또한 민간까지 확대해야 한다. 또한 민간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공 영역의 재난안전 데이터의 최소 표준규격을 민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안전 데이터를 공유하는 민간기업(단체)에는 국가 차원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7. (가칭)‘국가재난안전데이터센터’의 설립
앞서 제안한 내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 재난안전 데이터의 거버넌스를 총괄하고, 관련 인프라를 운영하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행정안전부가 범국가 차원의 재난안전 데이터를 총괄하는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나, 광범위한 재난안전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가칭) ‘국가재난안전데이터센터’를 설립해 국가의 재난안전 데이터 운영 정책과 방향을 수립하고, 재난안전 데이터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는 책임과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이른바 ‘국가재난안전데이터센터’는 재난안전 유관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공유하고 또 분석을 위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재난안전 유관 기관은 ‘국가재난안전데이터센터’에서 제공하는 분석 환경을 활용해 재난안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재난안전 유관 기관별로 중복 투자되는 분석 환경 구축 및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다양한 재난안전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활용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국가재난안전데이터센터’에서는 재난안전 유관 기관이 재난안전 데이터를 신규로 생성하거나, 관련 정보 시스템의 신규 구축 시 참조할 수 있는 범국가 차원의 재난안전 데이터 구축 가이드를 마련해 제공해야 한다.
맺음말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홍수 그리고 산사태 등 영화 속 재난 같은 일들이 빈번한 현실이 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확대됨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진정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델타변이라는 변수를 만나 힘겨운 싸움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 바이러스와의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 재난안전 데이터 거버넌스의 추진이 국가재난의 대응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 현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재난 상황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국가 재난안전 데이터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 고민의 목적은 특정 기관들의 이해관계나 선례를 벗어나 반드시 실질적인 재난 대응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재난 안전] - 2021년 가을호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