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DB분야에 열정을 쏟은 이가 있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 방황과 ‘가족’이라는 아픈 그리움도 한꺼번에 잠재웠던 게 ‘DB와 어머니’라고 말하는 비투엔컨설팅의 조광원 대표. 힘든 시기에도 절대 놓지 않았던 ‘DB’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가 19명의 임직원과 함께 2004년 창업한 비투엔컨설팅은 대표적인 토종 컨설팅 기업이다. 창업 7년 만에 업계 최초 매출인 116억 원을 달성하는 등 그야말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현재 임직원 70명을 보유한 비투엔컨설팅은 10년 이상의 시니어급 컨설턴트가 65% 이상을 차지할 만큼 우수한 전문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쏟은 열정 덕분에 2012년도 우수 DB인 상의 최고상인 ‘데이터 구루(Guru)’도 수상했다. “직원이 없었다면 나도 없다”라며 수상의 기쁨을 임직원들에게 돌렸던 진정 DB인 비투엔컨설팅 조광원 대표를 만나본다.

 


◈ 삶의 원동력 ‘어머니’

비투엔컨설팅 조광원 대표를 있게 한 중심에는 항상 ‘어머니’란 존재가 있었다. 시련의 연속이었던 중학생 시절을 포기했으나, ‘너는 꼭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어진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는 조 대표. 그는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며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꿋꿋하게 장학생으로 학창시절을 줄곧 보내온 수재였다.

 

‘데이터베이스’와의 질기고 애틋한 인연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도 어머니가 그렇게 외치던 ‘공부’를 한 덕분이었다.

 

청소년기 시절의 방황과 시련으로 중학교 졸업장도 받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에도 어머니의 위로와 채찍질이 그를 무섭도록 학업에 전념하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검정고시를 합격해 들어간 광주인성고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좌절의 늪이 저만치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을 낳아 홀로 길러주신 어머님은 호적상의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정형편이 너무 가난하여 고교생활 내내 사관학교로 진학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결국, 신원조회 과정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결국 고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전남대학교 계산통계학과에 진학하였으며 대학 4학년 때 어머님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눕고 말았다. 일가친척이 없어 본인 이외에는 어머님을 돌볼 수 없는 형편에서 군복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좌절은 곧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어머님을 위해 돈을 벌면서 군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학사장교로 근무하면서 전산장교로 발탁됐다. 당시 1,200명 중 50등 안에 들어야 가능했던 전산장교로 뽑혀 사회보다 DB분야가 앞섰던 군대에서 남보다 일찍 DB를 접하게 된 것이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상도 수상하면서 군대에서 꾸준히 준비운동을 하던 그는 이미 그때 지금의 자신을 만난 셈이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중학교도 검정고시, 대학도 지방대 출신이다. 하지만 남부럽지 않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이유는 단 하나. 한 분야를 정면 돌파하며 한 우물만을 파왔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DB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 DB는 삶의 첫 단추

조광원 대표는 1987년 육군학사장교로 사단사령부 전산실에서 전산장교 군복무 시절 처음으로 DB를 접했다. 군 입대 전 대학 4학년 재학 시절에 이미 총무처 전산직 7급 1기 국비장학생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첫 단추와 인생의 굴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25년 동안 DB에 열정을 쏟아낸 그였다. 그의 DB인생은 어머니가 아들을 향한 학업에 대한 채찍질과 수재로 줄곧 장학생으로 보낸 학창시절이 증명해준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군 복무 당시 주로 ISAM, VSAM File COBOL을 사용하던 시대에 오라클 DBMS(당시는 오라클 버전5)를 경험하면서 RDBMS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DB를 향한 열망이 깊어졌다. 이후 중위시절 육군본부 중앙전산소로 자리를 옮겨 DMS1100, INFORMIX 등 여러 가지 DBMS도 경험했다. 사회에서 경험하기 힘든 DBMS 활용과 설계 개발경험을 군복무 3년 동안 맘껏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시절 총무처 전산직 7급 1기 국비장학생이라는 첫 단추로 인해 전역 후 총무처 전산직 7급 공무원 자격으로 환경처 전산실(CIO)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의 삶은 절대 DB와 떼어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DB와 밀접하게 닿아있었다.

 

환경처에서 근무할 때는 PRIME장비에 오라클 DBMS를 기반으로 한 대기오염측정현황자동화(TMS)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필연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해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유일한 오라클 유경험자가 되어 있었다.

 

 

◈ DB인에서 ‘대표’로

이후에도 그에게는 뜻밖의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쌍용컴퓨터와 오라클과의 인연이었다. 1990년 쌍용컴퓨터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국가로부터 받았던 국비장학금을 부담하겠으니 자사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러브콜이었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접고 당시 정보통신 대표 전문기업이었던 쌍용컴퓨터 SI개발 부서에 배속되어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1993년에는 세계적인 DBMS 공급업체인 한국오라클로 자리를 옮겨 DBMS 전문가로서 발판을 다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수의 경험으로 인정받아오던 그는 1996년 미국 오라클 본사에 COE(Center Of Expertise)팀으로 배속됐다. 미국 본토에 자리 잡은 그는 DB전문가로서 연구와 컨설팅 서비스를 수행했다.

 

이후 그는 이화식 사장과 1997년 국내 최초 DB전문 컨설팅 기업인 엔코아정보컨설팅을 공동 창업해 DB컨설팅 시장의 문을 열었다. 2004년까지 60명이 넘는 DB전문 컨설팅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그는 ‘IT 전설이 되겠다’는 정신으로 2004년 10월 13일 전직장 동료 19명과 똘똘 뭉쳐 비투엔컨설팅을 창업했다.

 

‘세상을 바꿔보자’는 의지로 출발했지만 직원들에게 지급할 봉급이 없어 집을 담보로 빌린 돈으로 해결해야할 만큼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어려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비투엔컨설팅이 수주한 첫 프로젝트인 농협중앙회 EA컨설팅과 교육학술정보원의 NEIS DA컨설팅 등으로 당차게 출발 신호를 알렸다. 이후 SK텔레콤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비투엔컨설팅의 성장의 토대로 이뤄냈다.

 

 

◈ 전담 주치의 및 자문 변호사로 ‘지속 성장’

비투엔컨설팅의 성장의 중심에는 늘 임직원들이 있었다. 그가 직원을 향한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은 눈빛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는 “뛸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준 역할을 했을 뿐 마당에서 뛰어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갖춘 역량은 비투엔컨설팅의 핵심 원동력이었다. 직접 현장에 들어가 고객과 호흡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현재까지 걸어왔다. 현업에서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맞아 고객이 데이터를 경쟁력의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지금, 비투엔컨설팅은 자사 고객들이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효용성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이터 통합 사령탑’을 구축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목표로 세웠다.

 

그는 “데이터를 설계부터 구현 및 응용 단계 그리고 형상관리까지 데이터 관련 전 라이프 사이클에 걸쳐 전담 주치의뿐만 아니라 자문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환경에 맞는 실질적인 빅데이터 접근방법론을 통해 실제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04년 창업 이후 7년만에 2011년 업계 최초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여 116억 원을 달성한 비투엔컨설팅은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매출목표 130억원을 70명의 임직원으로 달성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목표치를 언론에 공개하면 꼭 이뤄졌다. 2013년 매출은 80명 정도의 규모에 145억 원정도 했으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꾸준히 달려온 결과로 뜻 깊은 결실도 맺었다. ‘2012 우수DB인 상’최고상인 ‘데이터 구루(Data Guru)’에 그가 선정된 것이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임직원들에게 수상의 기쁨을 돌렸고 데이터 전문가 양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 DB 전문가 양성에 ‘집중’

실제로 DB산업 발전과 관련된 일에는 발 벗고 나선다. DB산업협의회 초대 부회장, 컨설팅산업분과 위원장을 역임한것은 물론, 지금도 공공부처와 학계, 포럼 등의 DB와 관련한 자문 및 운영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여러 대외 활동과 함께 국민대학교 BIT대학원에서 IT-MBA 석박사 통합과정 겸임교수로 4년간 데이터 분야 전문 과정을 강의하고 있다. ‘깐깐이’라는 별명이 생길만큼 보강과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DB산업 발전과 DB 전문가 양성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비투엔컨설팅은 2015년 당산동에 새로운 사옥으로 사세를 확장하여 이전할 계획이며, 이곳에 ‘데이터 지식 교육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더 많은 DB 관련 전문가 양성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데이터 구루로 수상 받은 사람으로서 DB인력 양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데이터베이스는 장벽이 높아 아무나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분야이다. 그러나 한 분야에 계속 집중하면 이런 장벽도 무너뜨릴 수 있다”며, “데이터베이스 분야가 어렵지만 1%의 희망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B 전문가 양성을 위해 출판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DB 교과서로 평가받는 ‘대용량 DB솔루션 Ⅱ(1998)’를 공동 집필했었고, 비투엔컨설팅의 ‘Data Promaster Series'로‘오라클 성능 고도화 원리와 해법Ⅰ·Ⅱ(2009)’외 다수의 전문서적을 발행했다. 그는 25년 동안 DB와 함께 호흡하며 그 결실을 묶어 서적으로 출간할 계획도 세워나 가고 있다.

 

 

◈ 금연으로 ‘하나’되는 길

무엇보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우선이라고 그는 말했다. 비투엔컨설팅은 2011년 11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급여와 복지수준도 단연 돋보인다. 배우자와 부모, 자녀의 병원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등 각종 모임과 기념일에도 별도의 선물을 마련해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열심이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으로 하나되기’로 모범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7개월째 금연중이다. 김형태 부사장과 이창수 전무, 한종식 전무와 함께 시작한 금연열풍이 시작됐다. 한명이 실패하면 성공한 사람들이 적금을 나눠 갖는 규칙으로 시작된 금연운동은 2013년부터 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그는 7월 1일 본부장급 이상 금연운동을 시작한 것이 2012년 보람된 일로 꼽은 만큼 금연으로 ‘하나’되는 비투엔컨설팅의 앞으로의 건강한 행보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Posted by 비투엔